2012년 05월 09일
죽비소리
- 근데 왜 그러냐.
어제 어버이날에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엄마와 엉겁결에 김창훈 바오로 신부님이 계시는 곳에 찾아갔다. 봉천동 성당에서 동생을 제외한 우리 가족이 세례받았을 적 주임신부님이셨다. 부모님이 세례받으실 때 마지막 파견 쯤에 신부님이 '이방민족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 스스로를 '이방민족'이라고 자처하는 모습이 생경했고 좋았다. 신부님이 환갑잔치 때 국수먹는 본당 사람들을 둘러보시던 모습, 그날의 주일미사와 성당의 풍경, 평상시 미사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눈에 보이는 거룩한 행동으로 집전하시는 게 아니라 좀.. 내키는 대로 여러 기물들을 막 다루시는 모습, 담배를 끊겠다는 강론, 음.. 또.. 부모님 세례식 때 신부님께 맨 마지막 쯤에 성체를 받아모셨었는데 나에겐 좀 맘에 안 든다는 식으로 성체를 주셨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상처로. ^^
무척 기쁘게 갔다. 신부님은 나더러 어머니가 데리고 왔는데 기쁘게 왔다고 말하고 있으니 의아해하셨다. 난 엄마가 날 어딘가에 데리고 갈 의지와 정신, 간절함이 생긴 것이 기뻤다. 남의 손에 맡기는 방식이더라도 함께 가서 대화를 하려는 모습이 기뻤다. 그리고 음.. 두 시간 정도 신부님과 함께 있었다. 나더러 나불나불댄다고, 저렇게 나불거리니 우울할 틈이 없겠다고 말씀하실 만큼 나는 개구쟁이 톰보이처럼 굴었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억제하던 엄마가 그래도 자신을 많이 끌어내놓고 있어서 기뻤다.
대화 끝에 위에 있는 말을 단호하게 내뱉었다. 신부님은 바로 면박을 주셨다. 그 면박에 난 뭐라 대꾸할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 제일 큰 수확이었지만 신부님과의 마지막 말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다. 그리고 그동안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처럼 일이 다 일어나고 나서야, 신기한 체험을 겪어보고 시간이 지나서야 말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자의 태도이고, 여전히 하느님 안에 있지 못한 공허한 자의 태도이다. 슬펐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이러저러한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는 식의 말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그건 나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었고 깨달음을 주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신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종이오니, 당신의 뜻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고백은 하느님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특별히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는, 의심이나 원망이 없는 신앙이구나. ㅎ
좀 많이 뉘우쳐야겠~~~다.
까마귀들을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골방도 곳간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가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너희가 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냐? 그리고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들에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푸른 하늘과 제법 다 자란 잎사귀를 갖춘 푸른 나무들을 보며, 저 모든 것들이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항상 특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
# by | 2012/05/09 16:37 | ...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