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하느님은 절 사랑하세요. 특별히.
- 근데 왜 그러냐.

어제 어버이날에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엄마와 엉겁결에 김창훈 바오로 신부님이 계시는 곳에 찾아갔다. 봉천동 성당에서 동생을 제외한 우리 가족이 세례받았을 적 주임신부님이셨다. 부모님이 세례받으실 때 마지막 파견 쯤에 신부님이 '이방민족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 스스로를 '이방민족'이라고 자처하는 모습이 생경했고 좋았다. 신부님이 환갑잔치 때 국수먹는 본당 사람들을 둘러보시던 모습, 그날의 주일미사와 성당의 풍경, 평상시 미사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눈에 보이는 거룩한 행동으로 집전하시는 게 아니라 좀.. 내키는 대로 여러 기물들을 막 다루시는 모습, 담배를 끊겠다는 강론, 음.. 또.. 부모님 세례식 때 신부님께 맨 마지막 쯤에 성체를 받아모셨었는데 나에겐 좀 맘에 안 든다는 식으로 성체를 주셨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상처로. ^^

무척 기쁘게 갔다. 신부님은 나더러 어머니가 데리고 왔는데 기쁘게 왔다고 말하고 있으니 의아해하셨다. 난 엄마가 날 어딘가에 데리고 갈 의지와 정신, 간절함이 생긴 것이 기뻤다. 남의 손에 맡기는 방식이더라도 함께 가서 대화를 하려는 모습이 기뻤다. 그리고 음.. 두 시간 정도 신부님과 함께 있었다. 나더러 나불나불댄다고, 저렇게 나불거리니 우울할 틈이 없겠다고 말씀하실 만큼 나는 개구쟁이 톰보이처럼 굴었다. 스스로를 억압하고 억제하던 엄마가 그래도 자신을 많이 끌어내놓고 있어서 기뻤다. 

대화 끝에 위에 있는 말을 단호하게 내뱉었다. 신부님은 바로 면박을 주셨다. 그 면박에 난 뭐라 대꾸할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 제일 큰 수확이었지만 신부님과의 마지막 말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았다. 그리고 그동안 하느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처럼 일이 다 일어나고 나서야, 신기한 체험을 겪어보고 시간이 지나서야 말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자의 태도이고, 여전히 하느님 안에 있지 못한 공허한 자의 태도이다. 슬펐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이러저러한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는 식의 말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그건 나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었고 깨달음을 주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신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종이오니, 당신의 뜻이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고백은 하느님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특별히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는, 의심이나 원망이 없는 신앙이구나. ㅎ

좀 많이 뉘우쳐야겠~~~다.

까마귀들을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골방도 곳간도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가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너희가 이처럼 지극히 작은 일도 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것들을 걱정하느냐? 그리고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들에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푸른 하늘과 제법 다 자란 잎사귀를 갖춘 푸른 나무들을 보며, 저 모든 것들이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항상 특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 

by hyunju | 2012/05/09 16:37 | ... | 트랙백

의심

회오리가 인다 모두가 휘말린다 가만히 있는 검은 핵은 이 모든 힘의 중심이자 원천이다 회오리에 휘말려 들어간다 모두들 흐름만 본다 정신없이  

검은 핵을 예쁘게 표현해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었단다 이걸 쓴 창세기 저자는 정말 예쁜 마음을 지닌 피투성이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죽고나서 글만 읽는 사람들을 위해 글 뒤에 숨겨진 죽음의 핏자국을 산들 바람으로 지워냈다 검은 핵에 가닿게 되어 떠올릴 이야기가 잔혹한 동화이면 안 돼. 검은 핵에 닿았을 때이더라도 풍요의 땅에서 숨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이어야 해. 그래야 나는 죽더라도... 우리는 죽더라도...

나는 악인가. 다시 묻는다. 어쩔 수 없는 악인가. 요물단지네. 저런저런.

아니아니. 희한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 이런. 결국. 검고 검은. 핵을 봤어.
구역질이 났어. 피가 나왔어.

오후 3시. 십자가 옆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사선으로 쏟아지는 빛. 휘장이 찢어졌구나. 엉엉.

툭 끊어졌다 밥 먹다 밥숟가락 내던지듯이

by hyunju | 2012/05/02 22:29 | 습작 | 트랙백

神託

계시종교인 기독교를 가진 나는 무척이나 신의 존재를 직접 느끼고 싶어했던 것 같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난 보고 나서야 잘 믿게 되었다. 2005년 12월 즈음부터 막연히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2006년 3월 어느 날 새벽, 심장이 조각나서 지금 과연 박동이 이루어지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 함박웃음을 지으며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얘기하시는 신을 눈을 감고 보았다. 눈을 감고 보았으니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 체험을 '본 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소리도 들렸는데 아마 눈을 감고 본 것처럼 실제로 들은 게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들린 것이리라. 마음으로 보고 들었달까.
그 체험이 있고나서 내가 정말 고통을 겪어서이기도 하지만 내심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걸 무척 바라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녀서 그런지, 엄마가 무심코 강박증처럼 자주 '주여! 주여!' 라고 중얼거려서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심하게 아파서 기도를 했던 것 때문인지...
그 이후로 하느님께 자주 묻게 된다. 마음의 소리를 듣기를 바라고, 들을 때까지 묵주기도를 한 적도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존재가 바닥을 기는 상태는 아니더라도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정말 낮은 마음, 낮은 상태여야 했다. 잘 들리지 않을 때면 '지금 내가 교만해서 그런가?'라고 묻게 된다. 처음 들었을 때의 상태를 생각해보면 이젠 그때 만큼 절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심장이 잘 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약 6년이 넘는 시간을 되돌이켜보면 적어도 결정적일 때엔 항상 응답이 있었다.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는 내 판단과 예상을 뛰어넘는 강렬한 소리였다. 이건 도저히 무의식에서 그간 축적된 정보가 조합되어서 나온 거라거나 꿈처럼 욕망충족을 표현한 상징이라고 하기엔 말이 안 맞았다. 지금은 예전처럼 강렬한 느낌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편안하게 들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또 마음의 소리를 듣기보단, 침묵하시는 하느님,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의 이미지가 다가와서 내가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나보다 할 때가 있다. 마르코 연수 때의 고해 신부님은 이를 '젖떼기'라고 표현하셨다. 지금은 예전처럼 듣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까 그러나보다 하셨다. 
그리고 어떤 건 삶 전체를 통해서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을 때 가서야 '아! 하느님은 이런 계획이셨군요!' 할 것 같다. 뭐, 이런 질문들이다. '전 왜 태어났나요?' '전 왜 이 일을 하고 있나요?' '전 왜 이 사람을 사랑하나요?' 등등. 삶의 핵심적 의미와 관련된 것들은 도통 모르겠다. 모르고 싶은 건지 모르지만 도통 답이 없다. 하느님은 죽어라 침묵하신다. ^^  

by hyunju | 2012/04/26 00:07 | ... | 트랙백

눈의 꽃 - 박효신


어느새 길어진 그림자를 따라서
땅거미 진 어둠 속을 그대와 걷고 있네요
손을 마주 잡고 그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는 걸요

바람이 차가워지는 만큼 겨울은 가까워 오네요
조금씩 이 거리 그 위로 그대를 보내야 했던
계절이 오네요

지금 올해의 첫 눈꽃을 바라보며
함께 있는 이 순간에
내 모든 걸 당신께 주고 싶어
이런 가슴에 그댈 안아요
약하기만 한 내가 아니에요
이렇게 그댈 사랑하는데
그저 내 맘이 이럴 뿐인 거죠

그대 곁이라면 또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런 기분이 드네요
오늘이 지나고 또 언제까지라도
우리 사랑 영원하길 기도하고 있어요

바람이 나의 창을 흔들고
어두운 밤마저 깨우면
그대 아픈 기억마저도
내가 다 지워줄게요
환한 그 미소로

끝없이 내리는 새하얀 눈꽃들로
우리 걷던 이 거리가
어느새 변한 것도 모르는 채
환한 빛으로 물들어가요
누군가를 위해 난 살아갔나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이런 게 사랑인 줄 배웠어요

혹시 그대 있는 곳 어딘지 알았다면
겨울밤 별이 돼 그대를 비췄을 텐데
웃던 날도 눈물에 젖었던 슬픈 밤에도
언제나 그 언제나 곁에 있을게요

지금 올해의 첫 눈꽃을 바라보며
함께 있는 이 순간을
내 모든 걸 당신께 주고 싶어
이런 가슴에 그댈 안아요
울지 말아요 나를 바라봐요
그저 그대의 곁에서
함께이고 싶은 맘뿐이라고
다신 그댈 놓지 않을게요

끝없이 내리며 우릴 감싸온
거리 가득한 눈꽃 속에서
그대와 내 가슴에 조금씩
작은 추억을 그리네요
영원히 내 곁에 그대 있어요



***
흩날리는 벚꽃
입가에 맴돌던 오늘

by hyunju | 2012/04/20 21:25 | ... | 트랙백

너는 나의 봄이다

이제 곧 강아지가 태어나 옴죽거리며 젖은 몸을 말릴 것 같은
따스한 봄볕 오후 2월 겨울 어느 날

나 그대의 새집으로
그대가 맞을 새 시간으로 남들보다 먼저
성큼 걸어가
머물러 본다

새 학년을 기다리던 봄방학 때
새로 배정받은 반 담임 선생님께서
청소하자고 불러낸 날처럼 신이 났다

청소라기보다는 남들보다 먼저 우리 반 교실에 들어가서
책걸상과 교탁과 앞뒷문과 <3-7> 팻말을 눈에 담고
우리 반 유리창으로만 쏟아지는 견고한 햇살의 각도에 몸을 맞추고
새 칠판에 낙서해보다 지우개 솜을 땅땅 두들겨 지워봤듯이

이제 좀 새집이 익숙해졌는가
그곳에서 보낼 시간이 기대되는가
난 벌써 그곳만의 햇볕, 소리, 창 너머 보이는 풍경
모두 외워버렸는데

우리가 지나왔던 시간
어느 때 어느 곳
격렬하지 않은 적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줄기찼던 그대와 나의 줄다리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유일한 방법
철없는 애들처럼 막무가내로 버티던 우리를
신은 한 뼘씩 한 발자국씩 앞으로 당겨놓아
관통시켜버렸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나 그대를 이젠
사랑하리라

by hyunju | 2012/03/01 12:03 | 습작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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